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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ang Kemin (王克敏, 4 mai 1879 - 25 décembre 1945) est un homme politique chinois qui fut chef du mouvement républicain et du gouvernement de Beiyang, avant de devenir membre du gouvernement national réorganisé de la République de Chine collaborationniste. (fr)
- Wang Kemin (Chinese: 王克敏; pinyin: Wáng Kèmǐn; Wade-Giles: Wang K'o-min, May 4, 1879 – December 25, 1945) was a leading official in the Chinese republican movement and early Beiyang government, later noted for his role as in the collaborationist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China and Wang Jingwei regime during World War II. (en)
- 王 克敏(おう こくびん)は中華民国の政治家、銀行家、外交官。北京政府、国民政府の政治家で、後に中華民国臨時政府の首脳となる。さらに汪兆銘(汪精衛)の南京国民政府にも参加した。字は叔魯。 (ja)
- Ван Кэми́нь (кит. упр. 王克敏, пиньинь Wáng Kèmǐn; 4 мая 1879 — 26 декабря 1945) — китайский политический деятель первой половины XX века. (ru)
- 王克敏(1876年5月4日-1945年12月25日),字叔魯,浙江杭州人,中华民国政治人物、銀行家、外交官,日本扶持政權「中華民國臨時政府」的首腦之一。 (zh)
- Wang Kche-min (čínsky: 王克敏, narozen 4. května 1876 – zemřel 25. prosince 1945), přezdívaný Šu-lu (叔鲁), narozen v okrese Čchien-tchang v prefektuře Chang-čou v provinicii Če-ťiang, byl čínský politik a osobnost „Prozatímní vlády Čínské republiky“ (中华民国临时政府) pod záštitou Japonského císařství v letech 1937-1940. (cs)
- 왕커민(중국어: 王克敏, 병음: Wáng Kèmǐn, 1879년 5월 4일 – 1945년 12월 25일) 중국 공화 운동과 초기 북양 정부의 주요 관리였으며, 나중에 중화 민국 임시 정부에서의 이적 행위 역할로 유명하다. 왕은 저장성 항저우 출신이다. 1901년 중국 청나라 정부로부터 일본으로 파견되어 도쿄 주재 중국 대사관 공관으로 명목직을 거쳐 서구 경제학과 회계학을 공부했다. 1907년 중국으로 돌아온 후, 그는 외무를 관리하기 위해 직리 총독의 직위에 임명되었다. 중화민국이 수립된 후, 그는 1913년에 프랑스 로 파견되었다. 돌아온 후 된치루이의 명령으로 그는 중국 은행 설립을 도왔고 1917년 7월부터 총재가 되었다. 1917년 12월부터 1918년 3월까지 북양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냈다. 1918년 12월, 그는 북양 정부의 유일한 대표로서 중국 통일을 시도하는 난징 정부와의 회의에 참석했다. 장제스의 북벌이 성공하자 국민당은 왕커민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일본 관할 관동임대지역의 다롄으로 도피했다. 왕커민은 일본이 항복한 후 중화민국 정부에 체포되어 반역죄로 재판을 받았다. 그는 1945년 12월 25일 재판이 끝나기 전에 죽었다.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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